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.15 광복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[[부산광역시]]의 [[일제강점기]] 당시 [[일본인]] 집중거주지역은 변천정(弁天町, 벤텐마치), 금평정(琴平町, 코토히라마치) 일대였는데 [[왜색|매우 일본스러운 지명이었기 때문에]] 독립 이후 광복을 기념해 동네 이름을 '[[광복동]](光復洞)'으로 바꾸었다. * 위와 비슷한 사례로 [[일제강점기]] [[경성부]]의 [[일본인]] 위주의 상업지역이었던 혼마치(本町)는 과거 왜적을 물리친 [[충무공]] [[이순신]]에서 따 온 [[충무로]]로 바꾸었다. 그 외의 도시들도 대개 중심 번화가에는 본정 즉 혼마치(本町)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[* 지금도 일본에서는 도시 중심가를 이렇게 부른다.] 해방 후 각자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.[* 예) 대전 본정통(本町通)→인효로(仁孝路)] * 광복을 기억하기 위해 [[광복절]]에 태어난 아기에게는 이름을 ‘광복’이라고 붙이기도 한다. 이런 경우는 광복절에 태어난 남자아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. * 한국과 [[인도]]의 해방 날짜가 같다. 다만 요일은 한국 쪽이 [[수요일]], 인도 쪽이 [[금요일]]로 달랐다. 인도네시아 역시 일제 패망으로 주권을 회복하였으나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8월 17일이 국경일이다. * [[일제강점기]]에 태어난 세대는 ‘해방됐을 때 몇 살’ 하는 식으로 본인의 나이를 세기도 했다.[* 나이가 더 많은 경우는 ‘3.1 운동 때 몇 살’ 하는 식으로도 나이를 셌으나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고인이다. 학교를 다녔다면 '어느 학교 몇 학년 때 해방됐다.'는 말을 쓰기도 한다.] 해당 세대는 대다수가 [[중학교]] 입학 시험을 치르고 중학교에 들어간 세대였다. 광복 당시 졸업을 앞둔 국민학교(초등학교) 6학년이었던 세대의 경우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일본어로만 수업을 듣다가 졸업 직전에 해방되는 바람에 한글을 배우느라 학교를 1년 더 다녔다는 증언도 있다. * 당시 대한민국 법조계에 영향을 끼친 사건이 하나 있었다. 일제는 1년에 한 번씩 조선[[변호사]] 시험을 실시해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변호사를 뽑았다. 그리고 1945년도 변호사 시험은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4일간 치러질 예정이었다. 첫날 시험은 정상적으로 치러졌지만 두 번째 날인 8월 15일 시험은 오전만 치러지고 중단되었다. 응시생은 200명이었는데 이 중 106명은 변호사 자격을 달라고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. 일제는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계속되는 항의에 지쳐 '''106명 전원'''에게 변호사 자격을 줘 버렸다. 그리고 이들 106명의 조선변호사가 대한민국 법조계의 근간이 되었다. [[https://www.pressian.com/pages/articles/222931|관련 기사]] * 2021년 8월 15일 한국이 광복절 76주년을 맞이했지만 [[아이러니]]하게도 [[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|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정부가 탈레반에게 항복하고 주권을 탈레반에게 빼앗겨 버렸다.]] 한국이 나라를 되찾은 날 아프가니스탄은 자유를 잃은 것. * [[북한]] [[함경북도]] 지역 일부는 8월 15일 이전에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났다. [[소련군]]이 8월 9일 대일 선전포고 이후 [[만주 전략 공세 작전]]에 따라 8월 11일 한반도로 진입해 [[웅기군]], [[나진시]] 등을 점령했기 때문이다. 이후 [[청진시]]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일본이 항복했다. 하지만 북한 지역의 일이라 관심이 적기도 하고 북한 당국도 소련군의 자리에 김일성의 [[조선인민혁명군]]이라는 존재 자체가 허구인 군대를 대입하여 8.15 해방이 된 것이라고 선전하며 시기적으로도 8.15 광복과 며칠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게 다뤄지는 경우는 별로 없고 8.15 광복으로 퉁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